수리 가능성은 왜 다시 제품 전략이 되고 있는가

최근 하드웨어 시장에서는 수리 가능성을 강조하는 제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한때 모듈형 하드웨어는 미래 제품의 대안처럼 이야기됐다. 부품을 바꾸고, 기능을 더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조합할 수 있다는 생각은 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생각만큼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복잡했고, 비쌌고, 무엇보다 사용자가 매일 체감할 만한 분명한 이유를 만들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은 조금 다르다.

지금 이야기되는 수리 가능성은 모듈을 많이 나누는 문제가 아니다.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가.
공식 부품을 구할 수 있는가.
수리 가이드가 제공되는가.
소프트웨어 지원은 얼마나 이어지는가.

결국 제품을 얼마나 오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게 설계했는가에 가까운 이야기다.

제품을 오래 쓴다는 것은 단순히 내구성이 좋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오래 쓸 수 있으려면 고장 났을 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용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부품이 있어야 하고, 수리 경로가 있어야 하며, 제조사가 그 기간을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한다.

이 조건들이 함께 작동할 때 수리 가능성은 브랜드 메시지가 아니라 실제 제품 경험이 된다.

Fairphone이 보여주는 것

Fairphone(https://www.fairphone.com/)은 이 흐름을 가장 일관되게 보여주는 브랜드다.

Fairphone 5는 수리 가능한 구조뿐 아니라 장기 소프트웨어 지원, 예비 부품, 보증 정책을 함께 이야기한다. 판매 종료 이후에도 최소 2031년까지 부품과 수리 서비스, 소프트웨어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설명은 꽤 중요하다.

여기서 수리 가능성은 단순한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나사를 풀 수 있는가, 커버를 열 수 있는가 같은 물리적 조건을 넘어선다. 제품을 판매한 이후에도 얼마나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운영의 문제로 확장된다.

흥미로운 점은 CMF도 이 안에서 다시 보인다는 것이다.

Fairphone은 후면 커버를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다룬다. 동시에 100% 재생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와 색상 선택지를 함께 제시한다.

외장 파트가 단순한 마감이 아니라, 사용자가 제품을 유지하고 갱신하는 접점이 되는 셈이다.

커버를 바꾼다는 것은 단지 색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낡은 부분을 교체하고,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고, 제품을 조금 더 오래 자신의 물건으로 남겨두는 방식이다.

수리 가능성은 그렇게 기능의 언어에서 경험의 언어로 이동한다.

Framework가 보여주는 다른 방향

Framework(https://frame.work/)는 같은 흐름을 조금 더 급진적으로 밀어붙인다.

Framework Laptop 16은 수리 가능한 노트북이라기보다 업그레이드 가능한 하드웨어 플랫폼에 가깝다. 입력 모듈과 그래픽 모듈을 다시 구성할 수 있고, 사용자는 제품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편집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제품이 Framework처럼 설계될 필요는 없다.

모듈화는 자유도를 높이지만, 동시에 복잡도와 비용도 높인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모듈을 많이 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사용자의 개입을 허용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모듈형 제품은 출시 시점보다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나중에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후속 모듈을 기존 사용자에게 공급하는 것은 다르다.

Framework가 기존 Laptop 16과 호환되는 RTX 5070 Graphics Module을 발표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모듈성은 이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행 능력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HMD의 접근

HMD(https://www.hmd.com/)는 이 흐름을 더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HMD는 self-repair를 제품 페이지와 안내 페이지에서 전면에 둔다. “cracked screen and other parts replacement at home” 같은 표현은 수리 가능성을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라 일반 사용자의 언어로 바꾼다.

iFixit과 Gsmnet 같은 파트너를 통해 공식 부품과 가이드를 연결하는 방식도 그렇다.

자가수리는 더 이상 일부 사용자만의 취미가 아니라 브랜드가 허용한 유지관리 경로로 제시된다.

다만 메시지와 실제 접근성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국가별로 지원 범위가 다를 수 있고, 부품 공급이나 수리 파트너 접근성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수리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쉽게 수리할 수 있는 것은 아직 같은 말이 아니다.

수리 난이도를 모두 같은 수준으로 열어두지 않는 점도 흥미롭다.

HMD Skyline의 Ecodesign 시트는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수리를 다르게 구분한다. 배터리는 사용자가 기본 공구로 교체할 수 있지만, 디스플레이는 일반 수리점 수준의 도구가 필요한 작업으로 분류된다.

앞으로의 대중형 제품은 모든 수리를 DIY로 여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어떤 부품은 사용자가, 어떤 부품은 수리점이, 어떤 부품은 제조사가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게 될 것이다.

수리 가능성도 결국 설계의 문제이자 운영 구조의 문제다.

제도가 바꾸고 있는 것

이 흐름은 제도와도 맞물린다.

유럽연합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수리성, 업그레이드성, 배터리 수명 관련 요구사항을 적용하고 있다. 제품에는 Repairability Score도 표시된다.

수리 가능성이 일부 브랜드의 철학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비교 기준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Repairable 제품이 실제로 좋은 제품은 아니다.

부품 가격이 높을 수도 있다. 공급 기간이 짧을 수도 있다. 가이드는 있지만 분해 난이도가 높을 수도 있다. 특정 지역에서는 수리 서비스 자체에 접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어떤 부품을, 어떤 경로로, 얼마나 오래 수리할 수 있는가.

오래 사용하는 제품의 조건

수리 가능성은 이제 친환경 메시지의 일부만은 아니다.

제품 수명, 사용자 경험, 서비스 운영, 브랜드 신뢰를 연결하는 제품 전략에 가까워지고 있다.

모듈형 하드웨어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제품을 오래 쓰게 만드는 설계가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제품은 새로워 보여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큼 오래 이해되고, 관리되고, 리뉴얼 될 수 있어야 한다.

수리 가능성과 모듈성은 그 질문에 답하는 하나의 설계 언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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